역사이야기

서기 350년경, 엇갈린 운명: 백제의 전성기와 고구려의 수난

설쌤의 역사이야기 2025. 8. 4. 18:00

서기 4세기 중반, 한반도의 역사는 한 편의 극적인 드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남쪽의 백제는 위대한 정복 군주 아래 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바다 건너까지 위세를 떨쳤습니다. 반면, 북쪽의 고구려는 외세의 침략에 수도가 유린당하고 국왕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역사상 가장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었습니다. 한 나라의 영광이 다른 나라의 비극을 배경으로 펼쳐지던 이 시기, 삼국의 엇갈린 운명은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명암의 교차는 각국이 처한 환경과 리더십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백제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영토 확장과 문화 발전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고, 고구려는 중국 북방에서 발흥한 신흥 강국 '전연(前燕)'과의 생존을 건 사투에 내몰렸습니다. 그 사이, 신라는 두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내부 체제를 정비하며 힘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한반도라는 하나의 무대 위에서 세 나라는 각기 다른 생존 전략으로 미래를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백제, 한강의 지배자 근초고왕의 시대

백제의 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 재위 346-375)의 시대는 그야말로 백제 역사상 가장 빛나는 황금기였습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남쪽으로 눈을 돌려 아직 남아있던 마한(馬韓)의 잔여 세력을 완전히 복속시키고 전라도 남해안까지 영토를 넓혔습니다. 이후 북쪽으로 군대를 돌려 당시 시련을 겪고 있던 고구려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습니다. 그의 북진 정책은 371년, 평양성 전투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이 전투에서 백제군은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키는 엄청난 전과를 올리며 한반도 중부의 패권을 완전히 장악했습니다.



근초고왕의 위업은 영토 확장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학자 고흥(高興)에게 명하여 백제 최초의 역사서인 『서기(書記)』를 편찬하게 하여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했습니다. 또한 바다를 통해 중국 동진(東晉), 일본의 왜(倭)와 활발히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전파하는 문화 강국의 면모를 보였습니다. 당시 왜에게 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칠지도(七支刀)'는 백제의 뛰어난 철기 제작 기술과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물입니다.



고구려, 시련의 군주 고국원왕의 비극

백제가 영광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던 그 시각, 고구려의 16대 고국원왕(故國原王, 재위 331-371)은 끝없는 수난의 가시밭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342년, 중국 북방을 장악한 선비족의 전연(前燕)이 수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고구려의 수도 환도성은 또다시 함락되어 불탔고, 5만 명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숨겨진 이야기] 아버지의 시신을 담보로 한 굴욕

전연의 왕 모용황(慕容皝)이 저지른 만행 중 가장 치욕적인 것은, 고국원왕의 아버지인 미천왕의 무덤을 파헤쳐 그 시신을 인질로 가져간 것이었습니다. 아들로서, 그리고 한 나라의 왕으로서 아비의 시신을 적에게 빼앗긴 고국원왕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입니다. 그는 결국 전연에 신하를 자처하고 수많은 공물을 바친 끝에 겨우 아버지의 시신을 돌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 나라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굴욕이었으며, 고국원왕 개인의 비극이자 고구려 전체의 깊은 상처로 남았습니다. 이 시련은 훗날 고구려가 복수를 다짐하며 더욱 강한 국가로 거듭나는 정신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북쪽의 위협에 시달리며 국력이 쇠약해진 고구려에게 남쪽의 백제는 새로운 위협이었습니다. 결국 371년, 근초고왕이 이끄는 백제군이 평양성까지 쳐들어왔고, 고국원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우다 화살에 맞아 전사하고 맙니다. 외세의 침략으로 아버지를 잃고, 남쪽의 경쟁자에게 자신마저 목숨을 잃은 그의 삶은 고구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한 페이지로 기록되었습니다.



신라, 조용한 혁명과 내물 마립간의 등장

고구려와 백제가 이처럼 치열하게 다투는 동안, 신라는 큰 전쟁에 휘말리지 않고 내부를 다지는 데 집중했습니다. 356년, 17대 내물 마립간(奈勿麻立干)이 왕위에 오르면서 신라에는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전까지 박(朴)·석(昔)·김(金) 3성(姓)이 교대로 왕위를 잇던 방식이 끝나고, 김씨 가문이 독점적으로 왕위를 세습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왕위 계승을 안정시켜 왕권을 크게 강화하는 조치였습니다.



또한 그는 왕의 칭호를 '이사금(尼師今)'에서 '마립간(麻立干)'으로 바꾸었습니다. '마립간'은 '으뜸가는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로, 여러 부족장 중의 대표가 아닌,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대군장으로서의 지위를 상징합니다. 이는 신라가 연맹 왕국 단계를 벗어나 본격적인 고대 국가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조용한 혁명이었습니다.



서기 350년경, 한반도는 이처럼 영광과 오욕, 전쟁과 평화가 공존하는 복잡한 시대였습니다. 백제의 화려한 전성기는 고구려의 피와 눈물을 대가로 한 것이었고, 신라는 그 틈에서 조용히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이 엇갈린 운명의 시간들은 곧 다가올 광개토대왕의 시대를 예고하는 거대한 서막이었습니다.



서기 4세기 중후반 주요 사건 도표

연도 (서기) 국가 주요 사건 비고
342년 고구려 전연(前燕)의 침공으로 수도 환도성 함락 미천왕의 시신과 왕모, 백성 5만 명이 인질로 잡힘
346년 백제 근초고왕 즉위 백제 최전성기의 시작
356년 신라 내물 마립간 즉위 김씨 왕위 세습 시작, '마립간' 칭호 사용
369년 백제 마한(馬韓) 완전 정복. 가야, 왜와 연합 남부 지역에 대한 지배력 확립
371년 백제-고구려 평양성 전투에서 백제가 승리 고구려 고국원왕 전사, 백제는 한강 이북까지 진출
372년 고구려, 백제 고구려, 불교 수용 (전진에서). 백제, 동진에 조공 및 책봉 두 나라 모두 중국과 외교를 통해 국가 체제 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