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서기 450년경, 거대한 체스판: 장수왕의 남하와 나제동맹의 탄생

설쌤의 역사이야기 2025. 8. 5. 00:00

서기 5세기 중반, 한반도는 거대한 체스판과 같았습니다. 북쪽에서는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長壽王)이 고구려의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며 남쪽을 향한 거대한 압박을 시작했습니다. 이 위협적인 움직임에, 수백 년간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던 남쪽의 두 앙숙, 백제와 신라가 마침내 손을 잡았습니다. '나제동맹(羅濟同盟)'의 결성은 생존을 위한 절박한 선택이자, 한반도의 세력 균형을 뒤흔드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한 군주의 거대한 야망이 어떻게 적대국들을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묶었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정학적 드라마의 시대입니다.



장수왕은 아버지처럼 불꽃같은 정복전보다는, 거대한 제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며 상대를 서서히 옥죄는 '압박의 대가'였습니다. 그의 남진 정책은 단순한 군사적 위협을 넘어, 백제와 신라의 외교, 정치, 그리고 왕의 운명까지 송두리째 뒤흔들었습니다. 이에 맞서 남쪽의 두 나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했고, 그 과정에서 역사에 길이 남을 충신과 비운의 군주가 탄생했습니다.



고구려, 남쪽으로 향하는 칼끝, 평양 천도

427년, 장수왕은 고구려의 수도를 만주 지역의 국내성에서 대동강 유역의 평양으로 옮기는 중대 결단을 내립니다. 이는 고구려의 국가 전략이 북방 대륙에서 한반도 내부로 완전히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새로운 수도 평양은 남쪽의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기에 최적의 위치였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백제의 수도 위례성과 신라의 수도 서라벌은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고구려라는 거대한 힘이 이제 자신들의 턱밑까지 다가왔음을 직감한 것입니다. 장수왕의 이 수는 한반도 전체의 운명을 건 거대한 체스 게임의 첫수였습니다.



적과의 동침, 나제동맹을 맺다

고구려의 압박에 가장 큰 위협을 느낀 것은 백제였습니다. 이미 광개토대왕에게 국왕이 무릎을 꿇는 치욕을 겪었던 백제는, 장수왕의 평양 천도를 제2의 국난으로 받아들였습니다. 433년, 백제의 비유왕(毗有王)은 오랜 숙적이었던 신라에 사신을 보내 화친을 제안합니다. 신라의 눌지 마립간(訥祗麻立干) 역시 고구려의 과도한 내정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힘을 키울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에 이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이로써 100년 넘게 한반도 남부의 패권을 두고 다투던 두 나라가 공동의 적, 고구려에 맞서기 위한 '나제동맹'을 체결하게 됩니다. 어제의 원수가 오늘의 동지가 된 것입니다. 이 동맹은 이후 120년간 유지되며 한반도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이 되었습니다.



[숨겨진 이야기] 신라의 충신, 박제상의 전설

나제동맹을 결성한 신라의 눌지 마립간에게는 깊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의 두 동생이 각각 고구려와 왜(倭)에 인질로 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왕의 근심을 덜기 위해 나선 이가 바로 충신 박제상(朴堤上)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고구려로 가 특유의 기지로 동생을 구출해 신라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곧바로 그는 왜로 건너가 또 다른 동생을 탈출시켰으나, 안타깝게도 자신은 왜군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왜의 왕은 그의 충성심을 높이 사 신하가 될 것을 권유했지만, 박제상은 "차라리 신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다(寧爲雞林犬豚 不爲倭國臣子)"고 외치며 끝까지 절개를 지켰습니다. 결국 그는 온몸이 불에 타는 끔찍한 형벌을 받고 순국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나라와 군주를 향한 흔들림 없는 충절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백제 개로왕의 필사적인 저항과 비극

나제동맹 이후에도 장수왕의 압박은 계속되었습니다. 백제의 21대 개로왕(蓋鹵王)은 고구려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대대적인 토목공사를 벌여 수도 위례성을 요새화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키느라 국고를 탕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라 판단한 그는 마지막 수단을 강구합니다. 472년, 그는 중국의 신흥 강국이었던 북위(北魏)에 국서를 보내 고구려를 함께 공격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개로왕의 국서에는 "고구려는 승냥이와 이리 같은 마음을 품고 만족할 줄을 모릅니다. (중략) 신과 고구려는 원한이 뼈에 사무쳤으니, 폐하의 군대가 이 땅에 오신다면 신은 마땅히 나라를 들어 군사로 삼겠습니다."라며 고구려에 대한 적개심과 절박함이 그대로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위는 고구려와의 관계를 고려하여 이 제안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이 국서의 내용을 장수왕에게 그대로 알려주었습니다. 자신의 등에 칼을 꽂으려 한 사실을 알게 된 장수왕은 격노했고, 이는 몇 년 뒤 백제의 수도가 함락되고 개로왕이 비참한 최후를 맞는 '475년 한성 함락'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서기 450년경, 한반도는 장수왕의 남진 정책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제국의 위상을 굳혔고, 백제와 신라는 생존을 위해 역사적인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 시기의 치열한 수 싸움과 외교전,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충신들의 이야기는 삼국 시대의 역사가 얼마나 입체적이고 역동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기 5세기 중반 주요 사건 도표

연도 (서기) 국가 주요 사건 비고
427년 고구려 장수왕,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김 본격적인 남진 정책의 시작을 알림
433년 백제-신라 백제 비유왕과 신라 눌지 마립간, 나제동맹 체결 고구려의 위협에 맞선 군사 동맹
430년대 후반 신라 박제상, 고구려와 왜에 인질로 간 왕의 동생들을 구출 박제상은 왜에서 순국함
455년 백제 개로왕 즉위 강력한 반(反)고구려 정책을 추진
458년 신라 눌지 마립간 사망, 자비 마립간 즉위 나제동맹이 유지됨
472년 백제 개로왕, 북위에 국서를 보내 고구려 협공을 요청 북위가 이를 거절하고 고구려에 알리면서 실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