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8세기 중반, 한반도에는 마치 두 개의 태양이 떠오른 듯, 남과 북의 두 나라가 나란히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화적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남쪽의 통일신라는 오랜 전쟁을 끝내고 불교 예술의 정수인 불국사와 석굴암을 빚어냈고, 북쪽의 발해는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아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며 위세를 떨쳤습니다. 서기 750년경은 어느 한쪽의 시대가 아닌, 남북국(南北國)이 각자의 방식으로 문화와 국력의 최정점에 도달했던, 우리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대 중 하나였습니다.
이 시기는 거대한 정복 전쟁이나 영웅의 서사 대신, 한 재상의 지극한 효심이 빚어낸 위대한 건축물, 아이를 희생시켜 만들었다는 슬픈 전설의 종, 그리고 드넓은 제국을 안정적으로 다스린 북방 군주의 이야기가 역사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전쟁의 포화가 멎은 자리에 피어난 두 나라의 찬란한 문화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자부심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남쪽의 태양: 신라, 불국토(佛國土)를 꿈꾸다
통일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 재위 742-765) 시대는 신라 문화의 르네상스였습니다. 수도 서라벌(경주)은 인구 100만에 육박하는 세계적인 도시로 번성했고,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서역의 문물과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이 문화적 용광로 속에서 신라인들은 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인류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예술품을 탄생시켰습니다. 그 정점에 바로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불사(佛事)를 주도한 인물은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金大城)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착한 성품 덕에 후생에는 재상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현생의 부모님을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서는 석굴암을 지어 지극한 효심을 표현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불교의 윤회 사상과 효(孝)가 결합된, 신라인들의 깊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숨겨진 이야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담긴 종, 에밀레종
경덕왕은 아버지 성덕왕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거대한 종의 제작을 명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한계로 종은 자꾸만 갈라지고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했습니다. 한 고승의 꿈에 "어린아이를 시주받아 함께 녹여야 종이 완성될 것"이라는 계시가 나타났고, 한 가난한 여인이 결국 자신의 아이를 시주했습니다. 아이를 쇳물에 넣고 완성된 종은 마침내 온 나라에 울려 퍼질 만큼 맑고 깊은 소리를 냈지만, 그 소리가 마치 아이가 "에밀레(어머니)"를 부르는 것처럼 구슬프게 들렸다고 합니다. '성덕대왕신종'의 또 다른 이름인 '에밀레종'의 슬픈 전설은, 하나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탄생시키기 위해 수많은 백성의 희생과 염원이 담겨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북쪽의 태양: 해동성국 발해의 위상
같은 시기,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던 발해는 제3대 문왕(文王, 재위 737-793)의 오랜 통치 아래 최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문왕은 아버지 무왕(武王)이 다져놓은 군사적 기반 위에서 안정적인 외교와 활발한 문화 교류를 통해 발해를 동북아시아의 강국으로 키워냈습니다. 당나라의 제도를 받아들여 3성 6부 체제의 중앙 관제를 정비했고, 여러 차례 수도를 옮기며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렸습니다. 특히 수도였던 상경(上京)은 당나라의 장안성을 본떠 만든 거대한 계획도시로, 발해의 높은 국력을 상징했습니다.
"해동성국(海東盛國)", 즉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 이는 당시 중국이 발해의 국력과 문화 수준을 인정하며 붙여준 별칭입니다. 이는 발해가 더 이상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작은 나라가 아닌, 당당한 동아시아의 선진국이었음을 증명합니다.
문왕은 신라, 당나라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바다 건너 일본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했습니다. '일본도(日本道)'라 불리는 동해 뱃길을 통해 30여 차례나 사신을 보내며 신라와 당을 견제하는 외교적 실리를 추구했습니다. 그가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를 '고려(고구려) 국왕' 또는 '천손(天孫)'이라 칭하며 강한 자부심을 드러낸 것은,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독립적인 천하관을 가진 제국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서기 750년경, 신라와 발해는 이처럼 각자의 영토에서 서로 다른 색깔의 문화를 최정점으로 꽃피웠습니다. 신라가 불교 예술의 깊이를 더해갔다면, 발해는 고구려의 기상에 당나라의 문화를 더해 국제적이고 웅장한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비록 두 나라의 황금기는 영원하지 않았지만, 이 시기에 남겨진 위대한 유산들은 우리 역사가 가장 넓고 풍요로웠던 시대의 증인으로 남아 있습니다.
서기 8세기 중반 주요 사건 도표
연도 (서기) | 국가 | 주요 사건 | 비고 |
---|---|---|---|
737년 | 발해 | 문왕 즉위 | 발해 문화의 최전성기를 이끎 |
742년 | 신라 | 경덕왕 즉위 | 신라 불교 예술의 황금기를 주도 |
751년 | 신라 | 김대성, 불국사와 석굴암 창건 시작 | 신라 불교 건축과 조각의 정수 |
755년 | 발해 | 수도를 중경에서 상경으로 옮김 | 상경용천부는 발해 최대의 수도였음 |
757년 | 신라 | 녹읍(祿邑) 부활 | 귀족 세력의 경제적 기반이 강화되어 왕권 약화의 원인이 됨 |
765년 | 신라 | 경덕왕 사망, 혜공왕 즉위 | 혜공왕 대부터 신라의 내부 혼란이 심화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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