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서기 650년경, 복수의 동맹: 김춘추, 통일 전쟁의 서막을 열다

설쌤의 역사이야기 2025. 8. 5. 19:00

서기 7세기 중반, 한반도는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삼국의 균형이 깨지고 하나의 통일 국가로 나아가는 마지막 진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역사의 전환점 중심에는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심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로 신라의 외교가이자 훗날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되는 김춘추(金春秋)입니다. 백제에 의해 딸과 사위를 잃은 그의 개인적인 비극은, 신라의 국가적 생존 전략과 맞물려 당나라(唐)라는 거대한 외세를 끌어들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당(羅唐) 동맹'의 결성은 삼국 통일 전쟁의 서막을 연 위대한 도박이자,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을 예고하는 비정한 선전포고였습니다.



이 시기는 김춘추라는 뛰어난 외교가, 그의 평생 동지이자 불세출의 명장 김유신(金庾信), 폭정으로 고구려를 장악한 독재자 연개소문(淵蓋蘇文), 그리고 초반에는 명군이었으나 말년에 오판을 거듭한 비운의 군주 백제 의자왕(義慈王) 등, 개성 넘치는 영웅들이 각국의 운명을 걸고 마지막 힘을 겨루던 때였습니다. 이들의 선택 하나하나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있었습니다.



격동의 642년: 모든 비극의 시작

642년은 한반도 삼국의 운명을 결정지은 해였습니다. 백제의 의자왕은 대대적인 신라 침공에 나서 대야성(오늘날 경남 합천)을 포함한 40여 개 성을 함락시켰습니다. 이 대야성 전투에서 성주였던 김품석과 그의 아내, 즉 김춘추의 딸 고타소가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딸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키겠다"며 복수의 칼을 갈았습니다. 같은 해, 북쪽의 고구려에서는 대장군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왕을 죽이고 스스로 대막리지(大莫離支)에 올라 모든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독재자 연개소문의 등장은 신라에게는 또 다른 거대한 위협이었습니다.



김춘추의 외교: 적의 적과 손을 잡다

사면초가에 놓인 신라를 구하기 위해 김춘추는 외교 무대에 직접 나섭니다. 그는 먼저 고구려의 연개소문을 찾아가 백제를 함께 공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신라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유역을 돌려주면 군사를 내어주겠다고 역으로 제안했고, 김춘추가 이를 거부하자 그를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김춘추는 고구려와의 동맹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바다를 건너 당나라로 향합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김춘추의 외교 행보는 이 말을 그대로 증명합니다. 그는 648년, 당 태종(太宗)과의 담판에서 마침내 '나당 동맹'을 성사시킵니다.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다는, 한반도의 운명을 건 군사 동맹이었습니다. 이는 신라의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자, 가장 위험한 선택이었습니다.



[숨겨진 이야기] 안시성의 기적: 나당 동맹을 부추긴 전투

나당 동맹이 체결되기 전인 645년, 당 태종은 연개소문의 쿠데타를 명분으로 수십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당군은 파죽지세로 요동의 여러 성을 함락시켰지만, 작은 산성인 안시성(安市城) 앞에서 발이 묶이고 맙니다. 안시성의 성주(양만춘으로 전해짐)와 군민들은 몇 달에 걸친 당군의 파상공세를 모두 막아내는 기적 같은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국 보급이 끊기고 겨울이 다가오자, 천하의 당 태종도 안시성 하나를 넘지 못하고 치욕적인 퇴각을 해야 했습니다. 이 전투는 고구려의 강인함을 보여준 위대한 승리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당나라가 고구려를 혼자 힘으로 정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 결과, 당나라는 신라의 동맹 제안을 더욱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되었고, 나당 연합군이 상대적으로 약한 백제를 먼저 공격하는 전략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복수의 군주, 통일의 문을 열다

654년, 마침내 김춘추는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으로 즉위합니다. 그의 곁에는 평생의 동지이자 신라 최고의 명장인 김유신이 있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무열왕의 목표는 오직 하나, 딸의 원수인 백제를 멸망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즉위와 동시에 나당 연합군을 동원한 백제 정벌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의자왕의 실정으로 국정이 혼란스러워진 백제,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지만 외교적으로 고립된 고구려, 그리고 복수심에 불타는 신라의 군주와 당나라의 거대한 군사력. 모든 조각이 맞춰졌습니다. 서기 650년대는 삼국의 명운을 건 마지막 전쟁을 향해 모든 것이 달려가던, 숨 막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서기 7세기 중반 주요 사건 도표

연도 (서기) 국가 주요 사건 비고
641년 백제 의자왕 즉위 초기에는 적극적인 신라 공격으로 영토 확장
642년 고구려, 백제 연개소문, 정변으로 집권. 백제, 신라 대야성 함락 김춘추의 딸 사망. 삼국 관계 격변의 시작
643년 신라, 고구려 김춘추, 고구려에 군사 지원을 요청했으나 실패하고 감금됨 신라, 고구려에 대한 적대 관계를 굳힘
645년 고구려-당 제1차 고구려-당 전쟁 발발, 안시성 전투 고구려가 당의 대규모 침공을 격퇴함
648년 신라-당 김춘추, 당나라에 건너가 나당(羅唐) 동맹 체결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기로 약속
654년 신라 김춘추, 태종무열왕으로 즉위 백제 정벌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음
660년 신라-당, 백제 나당 연합군, 백제 침공. 황산벌 전투 후 수도 사비성 함락 백제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