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서기 700년경, 남북국 시대의 개막: 통일신라와 고구려의 후예, 발해

설쌤의 역사이야기 2025. 8. 5. 22:00

서기 700년, 삼국 통일의 격렬한 전쟁이 막을 내린 지 한 세대가 지난 한반도는 새로운 질서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흔히 이 시기를 '통일신라 시대'라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이는 한반도의 절반만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남쪽에서는 삼한을 일통한 신라가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고 있었지만, 북쪽의 만주 벌판에서는 멸망했던 고구려의 유민들이 잿더미 속에서 '발해(渤海)'라는 새로운 나라를 일으켜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시기는 하나의 통일 왕조 시대가 아닌,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공존했던 '남북국 시대(南北國時代)'의 서막을 연 시간이었습니다.



남쪽의 신라가 안정과 통합의 시대를 구가했다면, 북쪽의 발해는 투쟁과 부활의 서사를 써 내려갔습니다. 한쪽에서는 나라의 모든 근심을 잠재우는 신비로운 피리가 등장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필사의 탈출과 건국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이 두 왕국의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서기 700년경 한반도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남쪽의 신라: 평화의 시대와 만파식적(萬波息笛)

삼국 통일 이후, 신라는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특히 통일의 위업을 마무리한 문무왕의 아들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은 귀족 세력의 반란을 제압하고 관료 제도를 정비하며 절대 왕권을 확립했습니다. 그는 정복된 백제와 고구려 유민들을 차별하지 않고 신라의 군사 조직에 편입시키는 등, 진정한 '통합'을 위한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의 시대에 비로소 전쟁의 상처가 아물고, 백성들은 오랜만에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숨겨진 이야기]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피리, 만파식적

『삼국유사』에는 신문왕 시대의 평화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설화가 전해집니다. 죽어서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던 아버지 문무왕과, 하늘의 신이 된 김유신 장군이 힘을 합쳐 신문왕에게 신비로운 대나무를 선물했습니다. 왕이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적군이 물러가고, 질병이 나았으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장마는 그쳤습니다. 이 피리를 '만 개의 파도를 잠재우는 피리'라는 뜻의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불렀습니다.

 

 

"이 피리를 불면 천하가 모두 화평해질 것입니다."

 

 

만파식적 설화는 단순히 신비한 이야기가 아니라, 통일 전쟁의 모든 혼란을 잠재우고 강력한 왕권 아래 태평성대를 이룩한 신문왕 시대의 안정과 번영을 상징하는 이야기입니다.



북쪽의 발해: 잿더미 속에서 부활한 고구려의 후예

신라가 평화를 구가하던 시각, 북쪽에서는 고구려 부흥을 위한 처절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668년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에 끌려가거나 흩어져 살던 고구려 유민들은 독립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698년, 고구려의 장군 출신이었던 대조영(大祚榮)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당나라의 통제에서 벗어나 동쪽으로의 대탈출을 감행합니다. 당나라는 즉시 대규모 추격군을 보냈습니다.



대조영의 군대는 지금의 중국 길림성 부근인 천문령(天門嶺)이라는 험준한 골짜기에서 필사의 항전을 준비했습니다. 좁은 길목으로 들어선 당나라 군대를 매복과 기습으로 공격하여 완전히 섬멸하는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천문령 전투'의 승리로 대조영은 독립의 기반을 마련하고, 동모산 기슭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나라 이름은 처음에는 진(震)이라 했으나 후에 발해(渤海)로 바꾸었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발해의 시조 고왕(高王)입니다. 발해는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분명히 했으며, 실제로 지배층의 상당수가 고구려인이었고 문화적으로도 고구려의 것을 계승 발전시켰습니다.



새로운 시대의 이름, 남북국 시대

이처럼 서기 700년경 한반도에는 남쪽의 통일신라와 북쪽의 발해라는 두 개의 독립된 국가가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신라는 삼국의 문화를 융합하여 찬란한 통일 문화를 꽃피웠고, 발해는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아 '해동성국(海東盛國)', 즉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 불릴 정도로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습니다. 이 두 나라가 공존하며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교류했던 약 230년의 기간을 오늘날 우리는 '남북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 용어야말로 당시 한반도의 역동적인 상황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이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기 8세기 초 주요 사건 도표

연도 (서기) 국가 주요 사건 비고
681년 신라 신문왕 즉위 통일신라의 중앙집권 체제를 확립
682년 신라 국학(國學) 설립 유교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 기관
692년 신라 신문왕 사망 '만파식적' 설화가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함
698년 발해-당 천문령 전투에서 대조영이 당나라 군대를 격파 발해 건국의 결정적 계기
698년 발해 대조영, 동모산에서 발해 건국 (초기 국호는 진) 남북국 시대의 시작
702년 신라 성덕왕 즉위 통일신라의 태평성대를 이끎
713년 발해 당나라, 발해를 '발해군왕'으로 책봉 발해의 독립적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