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서기 50년경, 한반도 - 삼국시대의 서막과 국가의 태동

설쌤의 역사이야기 2025. 8. 4. 00:00

서기 50년 전후, 한반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여는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었습니다. 이 시기는 단군조선과 같은 고대 국가의 시대가 저물고, 여러 부족 연맹체가 국가의 기틀을 다지며 서로 경쟁하고 교류하던 역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화려한 영웅 서사 뒤에는 국가의 생존을 위한 치열한 몸부림과 오늘날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 잊혀진 이야기들이 숨 쉬고 있습니다.



이 시기 한반도는 북쪽의 고구려, 남쪽의 삼한(마한, 진한, 변한)을 중심으로 세력권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삼한 지역에서는 마한의 수많은 소국 중 하나였던 백제국, 진한의 12개 소국 중 하나였던 사로국(신라), 그리고 변한의 소국들이 연맹하여 탄생한 가야가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아직 중앙집권적 고대 국가의 완성된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체제를 정비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폭군의 시대와 북방의 패자

서기 48년부터 53년까지 고구려를 다스린 왕은 제5대 모본왕(慕本王)입니다. 『삼국사기』는 모본왕을 성품이 포악하고 백성을 돌보지 않은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하의 간언을 활로 쏘아 위협하고, 앉고 눕는 것조차 사람을 깔고 할 정도로 잔인했다고 전해집니다. 결국 그는 자신을 곁에서 모시던 신하 두로(杜魯)에 의해 시해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신하에 의한 왕 시해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숨겨진 이야기] 폭군 모본왕의 두 얼굴

하지만 모본왕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폭군'이라는 단어로만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재위 2년(49년)에 군대를 이끌고 중국 한나라의 북평, 어양, 상곡, 태원 등지를 공격하여 요서 지역까지 활동 범위를 넓힌 강력한 군주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고구려의 생존 공간을 확보하고 동북아시아의 신흥 강자로서의 위상을 다지려는 의도였습니다. 또한, 같은 해 나라에 기근이 들자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휼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폭정과 구휼, 정복 군주의 면모가 공존하는 그의 모습은 초기 국가 형성 과정에서 왕권 강화와 영토 확장을 위해 얼마나 극단적인 방법이 동원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복합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신라, 이주민 출신 왕의 등장

같은 시기, 한반도 동남쪽의 신라(당시 사로국)에서는 제4대 왕으로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이 즉위(57년)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출생 설화는 매우 신비롭습니다. 그는 본래 왜국(倭國) 동북쪽 1천 리에 있는 다파나국(多婆那國)의 왕자로, 알에서 태어났으나 불길하다는 이유로 궤짝에 담겨 바다에 버려졌습니다. 이 궤짝이 동해안 아진포에 닿았고, 한 노파에 의해 발견되어 길러졌다고 합니다. 총명하고 지혜로웠던 그는 남해 차차웅의 사위가 되고, 유리 이사금에 이어 왕위에 오르며 신라 김(金), 박(朴), 석(昔) 3성 교대 왕위 계승의 한 축인 석씨 왕조를 열었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이 한 나라의 왕이 되다." 이는 당시 신라 사회가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자, 출신보다는 능력을 중시했던 시대의 단면입니다. 이러한 포용성은 훗날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저력이 되었습니다.



가야, 철과 국제결혼으로 싹튼 나라

변한 지역에서는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한 가야 연맹이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따르면, 서기 42년에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황금알에서 6가야의 시조가 태어났고, 그중 첫째인 수로(首露)가 금관가야의 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48년에 일어난 그의 혼인 이야기입니다. 아유타국(阿踰陀國, 오늘날 인도의 아요디아로 추정)의 공주 허황옥(許黃玉)이 부모의 명을 받아 배를 타고 머나먼 바닷길을 건너와 수로왕과 혼인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1세기경에 이미 한반도 남단이 해상 교역을 통해 멀리 서역과도 연결되어 있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사건입니다.



가야의 건국 신화와 허황옥의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을 넘어, 철의 왕국 가야가 가진 개방성과 국제성을 상징합니다. 이는 혈통과 지연을 넘어선 교류가 새로운 국가의 탄생과 발전의 원동력이었음을 보여주며,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한강의 기적' 역시 이러한 '백절불굴'의 정신과 개방성이 현대적으로 발현된 것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서기 50년 전후의 한반도는 이처럼 각기 다른 서사를 가진 국가들이 태동하며 서로 경합하는 역사의 용광로였습니다. 고구려는 북방의 패권을 향해 나아갔고, 신라는 외부의 인재를 받아들여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가야는 해상 교류를 통해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경쟁과 교류의 역사가 쌓여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위기와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간 선조들의 이야기는 2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서기 1세기 전반 주요 사건 도표

연도 (서기) 국가 주요 사건 비고
42년 가야 금관가야 건국 (수로왕 즉위) 『삼국유사』 가락국기 기록 기준
48년 가야 수로왕과 허황옥 공주 혼인 한반도 최초의 국제결혼 기록으로 평가됨
48년 고구려 모본왕 즉위 고구려 제5대 국왕
49년 고구려 한나라 북평, 어양, 상곡 등지 공격 활발한 대외 정복 활동 전개
53년 고구려 모본왕, 신하 두로에게 피살 우리 역사상 최초의 신하에 의한 왕 시해
57년 신라 탈해이사금 즉위 신라 제4대 국왕, 석씨 왕조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