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기원후 0년대, 삼국의 여명과 한민족 정체성의 서막

설쌤의 역사이야기 2025. 8. 3. 21:41

우리가 '0년대'라는 시간을 마주할 때, 뚜렷하게 떠오르는 단일 사건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교과서 속 연표에 굵직하게 기록된 전쟁이나 조약이 있던 시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는 한반도 역사에 있어 그 어떤 시대보다 중요한, 거대한 서사의 시작점이었습니다. 바로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세 개의 국가가 각자의 터전 위에서 생존을 위한 기틀을 다지고, 이후 천 년 이상 이어질 한민족 정체성의 씨앗을 틔우던 '삼국의 여명기'였습니다.



기원전 57년 신라의 건국을 시작으로, 기원전 37년 고구려, 기원전 18년 백제가 차례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따라서 기원후 0년대는 이들 신생 왕국들이 건국 후 약 30년에서 50년의 시간을 보내며 국가의 체계를 잡아가던 혼돈과 기회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의 역사는 화려한 정복 전쟁보다는, 혹독한 환경 속에서 민족의 생존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의 기록에 가깝습니다.



북방의 바람을 맞서다: 고구려의 투쟁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광활한 영토에서 시작된 고구려는 탄생부터가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기원후 0년대 전후, 고구려 제2대 왕인 유리왕의 시대는 국가의 명운을 건 위기의 시간이었습니다. 당시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한나라(漢)는 한반도 북부에 낙랑군을 비롯한 군현을 설치하고 고구려를 끊임없이 압박했습니다. 고구려의 존재 자체가 한나라의 동방 정책에 큰 위협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리왕은 선비족, 부여 등 주변 세력과의 복잡한 외교 관계 속에서 한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수도를 국내성으로 옮긴 것 역시 이러한 군사적 압박 속에서 국가의 중심을 지키기 위한 절박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영토를 지키는 싸움을 넘어, '고구려'라는 새로운 공동체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민족적 항쟁의 시작이었습니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암수 서로 정다운데, 외로울사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 유리왕의 '황조가'

 

이 시기 유리왕이 남긴 '황조가'는 왕비들을 잃은 개인적인 슬픔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이면에는 끊임없는 외세의 위협 속에서 국가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던 군주의 고뇌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개인의 슬픔을 노래할 만큼, 당시 고구려가 처한 상황은 불안정하고 위태로웠던 것입니다.



한강 유역의 새 희망: 백제의 시작

같은 시기, 한반도 중부에서는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아들로 알려진 온조가 남쪽으로 내려와 한강 유역에 터를 잡고 백제를 건국했습니다. 이는 고구려라는 강력한 세력권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였습니다. 온조왕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마한의 여러 소국들을 병합하며 점차 세력을 키워나갔습니다.



백제의 건국은 고구려와는 또 다른 형태의 도전이었습니다. 북방의 강력한 군사적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수십 개의 부족 국가가 난립하던 한반도 중남부 지역에서 새로운 구심점이 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온조왕은 농업에 적합한 한강 유역의 지리적 이점을 활용하여 경제적 기반을 다지고, 주변 세력과의 외교 및 군사 활동을 통해 점차 국가의 기틀을 완성해 나갔습니다.



천년 왕국의 초석: 신라의 조용한 성장

한반도 동남쪽에서는 박혁거세가 6부 촌장의 추대를 받아 신라를 건국했습니다.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부의 큰 위협 없이 시작했지만, 이는 내부적인 통합이 더 중요한 과제였음을 의미합니다. 신라는 박(朴), 석(昔), 김(金) 세 성씨가 번갈아 왕위를 잇는 독특한 체제를 유지하며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중앙 집권 국가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며, 미래를 향한 나침반이다."

 

기원후 0년대의 신라는 아직 작고 조용한 나라였지만, 훗날 삼국을 통일하고 천년 왕국을 이룩할 잠재력을 조용히 키워나가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느리지만 꾸준한 성장은 훗날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고구려와 백제라는 거대한 두 세력 사이에서 살아남아 최후의 승자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역사는 우리에게 화려한 성공만이 아닌, 묵묵히 힘을 기르고 때를 기다리는 지혜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결론적으로 기원후 0년대는 한반도에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던 시기입니다. 비록 특정 사건으로 요약되지는 않지만, 고구려의 항쟁, 백제의 개척, 신라의 통합이라는 세 가지 큰 흐름이 시작된 때입니다. 외세의 핍박 속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려 했던 고구려의 투쟁 정신, 그리고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새로운 터전을 일군 백제와 신라의 개척 정신은 오늘날 수많은 역경을 이겨내고 발전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역사적 DNA, 즉 '백절불굴(百折不屈)' 정신의 원류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삼국시대 여명기 주요 사건 도표

연도 (기원전/후) 주요 사건 해당 국가 비고
BC 57년 박혁거세, 사로국(신라) 건국 신라 6부 촌장의 추대로 건국
BC 37년 주몽, 졸본에 고구려 건국 고구려 부여에서 남하하여 건국
BC 19년 유리왕, 고구려 제2대 왕으로 즉위 고구려 주몽의 아들, 부여에서 탈출하여 즉위
BC 18년 온조, 위례성에 백제 건국 백제 주몽의 아들, 한강 유역에 정착
AD 3년 고구려, 수도를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 고구려 외세의 위협에 대응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위함
AD 4년 남해 차차웅, 신라 제2대 왕으로 즉위 신라 박혁거세의 맏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