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무속 소비

무속 콘텐츠 인기, 코로나 이후 무엇이 달라졌나?

tsbs1 2025. 6. 24. 16:00

한때 특정 계층의 폐쇄적인 문화로 여겨지던 ‘무속’이 이제는 유튜브 알고리즘과 SNS 타임라인 위를 활보하는 주류 콘텐츠가 되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점집 브이로그’, ‘타로 실시간 점사’, ‘신내림 체험기’ 등 무속 콘텐츠는 급속히 증가하며 플랫폼에서 폭넓은 소비를 이끌어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변화를 단순한 유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속 콘텐츠의 폭발적인 확산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팬데믹이라는 전례 없는 사회적 충격과 맞물린 심리·문화적 결과물이다.
이 글에서는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사회 구조, 감정 구조, 콘텐츠 소비 환경 속에서 무속 콘텐츠가 어떤 방식으로 확산되었고 왜 대중에게 각인되었는지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무속 콘텐츠 변화

 

 

코로나 이전: 무속 콘텐츠는 ‘틈새시장’이었다

코로나19 이전 무속 콘텐츠는 플랫폼에서 주류 콘텐츠가 아니었다.
무속인들이 유튜브나 블로그를 운영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 다음과 같은 성격을 띠었다:

  • 오프라인 점집의 보조 홍보 수단
  • 한정된 신도 또는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정보 채널
  • 제한된 조회수와 낮은 구독자 수

실제로 2018~2019년 사이 유튜브 내 무속 채널은 존재는 했지만, 대부분 일반인의 관심 밖에 있었고 알고리즘 추천에도 거의 노출되지 않았다.
‘신기’, ‘무당’, ‘굿’이라는 키워드는 자극적이라는 이유로 차단되거나 필터링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 시기의 무속 콘텐츠는 신앙과 미디어 사이의 거리를 유지하며 조심스러운 경계선 위에 서 있었던 셈이다.

 

코로나19 이후: 무속 콘텐츠는 대중 콘텐츠가 되었다

하지만 2020년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코로나 팬데믹은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들었고, 그 변화는 무속 콘텐츠 소비에도 극적인 영향을 미쳤다.

 

불확실성의 시대, 점점 강해지는 ‘예측 욕구’

코로나19로 인해 삶의 예측 가능성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 “내 사업은 망하지 않을까?”
  • “이 사람과 결혼해도 될까?”
  • “언제쯤 이 상황이 끝날까?”

이러한 감정은 ‘사주’, ‘점’, ‘운세’ 같은 키워드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고, 유튜브나 포털에서 관련 콘텐츠를 찾아보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었다.

 

심리적 고립과 정서적 공감의 갈망

사회적 거리두기와 고립은 사람들에게 감정적 단절을 불러왔다.
오프라인 종교 활동, 모임, 상담 등이 중단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나를 위로해줄 무언가’를 화면 속에서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타인의 점사’를 보는 영상, ‘신내림 받은 사람의 사연’, ‘무속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정서적 위안의 수단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무속 콘텐츠는 바로 이 틈을 파고들었다.
사람들은 신을 믿어서가 아니라, 말을 걸어주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콘텐츠 형식의 변화: 신비에서 공감으로

코로나 이후 무속 콘텐츠는 단순한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공감 중심, 감정 연결 중심의 포맷으로 변형되었다.

브이로그형 무속 콘텐츠의 등장

예전에는 점사만 보여주는 형태가 많았다면, 이제는 무속인의 일상, 고민, 신내림을 받는 과정, 심지어 그들의 감정 상태까지 공유되는 브이로그가 많아졌다.

이런 콘텐츠는 무속인을 인간적으로 느끼게 만들며, 콘텐츠 소비자의 거부감을 낮추는 효과를 준다.

사연형 콘텐츠의 증가

코로나 이후 ‘실제 사연을 보내면 점사해주는 형식’이 급증했다.
사연은 익명으로 가공되며, 점사는 영상화된다.

이런 콘텐츠는 시청자에게 직접적인 감정 이입을 유도하며, 자신의 이야기와 유사한 사례를 찾는 과정을 반복하게 만든다.

이 형식은 ‘개인의 사적인 고통을 대중 콘텐츠로 전환’하는 강한 몰입력을 갖는다.

 

유튜브 알고리즘의 영향: 반복 노출과 콘텐츠 강화

무속 콘텐츠의 급부상은 유튜브 알고리즘 구조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본 콘텐츠와 유사한 유형을 반복적으로 추천한다.

무속 콘텐츠는 ‘클릭’과 ‘시청 지속 시간’이 높다

무속 콘텐츠는 제목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하고, 내용은 특정 결과나 ‘결론’을 기다리게 만드는 구조다.

 

예:

  • “그 사람은 왜 떠났을까?”
  • “이번 달 재물운 폭발합니다”
  • “전생에서 당신은 누구였을까요?”

이런 구조는 클릭률과 체류시간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알고리즘은 이 콘텐츠를 더 많이 추천한다.
→ 더 많은 노출 → 더 많은 소비 → 더 많은 제작 이라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무속 콘텐츠의 정체성 변화: 종교인가 콘텐츠인가?

코로나 이후 무속 콘텐츠가 대중화되면서 생긴 가장 중요한 변화는 바로 ‘정체성의 전환’이다.

  • 신을 믿기 위해 보는 콘텐츠가 아니라,
  • 심리적 위로와 공감, 정서적 치유를 위해 보는 콘텐츠가 된 것이다.

이 변화는 무속 콘텐츠의 성격을 바꾸었다.
이제 무속 콘텐츠는 더 이상 종교 콘텐츠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혹은 멘탈 헬스 콘텐츠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무속 콘텐츠는 어떻게 대중 정서와 연결되었는가?

사람들이 무속 콘텐츠를 단순히 재미나 신비함 때문에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시대가 만들어낸 정서적 공통 언어가 존재한다.

  • 불안정한 일상에 대한 위로
  • 예측 불가능한 미래에 대한 불안
  • 사회적 단절 속에서 누군가의 말에 의지하고 싶은 감정

무속 콘텐츠는 이 모든 것의 정서적 통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그 말에 기대고 싶어 하고, 그 목소리에 다시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무속 콘텐츠는 지금 ‘문화’가 되었다

코로나19는 무속 콘텐츠를 단순한 종교 영상에서 시대의 정서를 담는 디지털 문화 콘텐츠로 진화시켰다.

이제 무속 콘텐츠는 ‘믿는 사람만 보는 영상’이 아니다.
누구나 우연히 접하고, 반복적으로 보게 되며 자신의 감정과 연결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콘텐츠가 된 것이다.

무속 콘텐츠는 여전히 종교적 형식을 갖고 있지만 그 안에서 소비되는 것은 더 이상 ‘신앙’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 외로움, 예측 욕구, 위로… 즉, 현대 사회가 만들고 있는 감정의 총합이다.

 

무속 콘텐츠는 대안 종교인가, 감정 노동 콘텐츠인가?

코로나 이후 무속 콘텐츠는 단지 종교적 신념을 전파하는 도구가 아니라,
감정 노동의 도구로 변화했다.

시청자는 점사를 통해 미래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점사를 말하는 무속인의 말투, 표정, 분위기, 말속에 담긴 정서적 위로를 소비한다.
즉, 결과보다 말의 방식과 감정 표현이 콘텐츠의 중심이 되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이는 상담, 심리 치료, 종교적 조언의 대체제가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콘텐츠 제작자인 무속인이 점차 ‘감정 응답자’로 기능하게 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유튜브에선 “이 점사 듣고 울었어요”, “무속인님 말이 제 마음을 치유했어요” 같은 댓글이 수천 개씩 달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현상은 무속 콘텐츠가 대안 종교가 아닌, ‘치유형 감정 콘텐츠’로 재해석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다.

 

청년 세대는 왜 무속 콘텐츠에 끌리는가?

특히 20대~30대 청년 세대가 무속 콘텐츠에 가장 많이 노출되고, 소비하고, 때로는 직접 점사를 요청하기도 한다.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코로나 이후 청년 세대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

1. 취업 불안과 미래 불확실성

코로나 팬데믹은 고용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고, 청년 세대는 ‘준비해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이들은 공부나 노력을 투자해도 미래가 확정되지 않는 구조 속에서 살아가며, 예측 가능한 정보보다 확신 있는 멘트,
가령 “당신은 7월에 좋은 일이 생깁니다”라는 말에 감정적으로 끌리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속 콘텐츠는 불확실한 세계에 대한 가벼운 의지처가 된다.

 

2. 기존 종교에 대한 거리감

MZ세대는 기존 제도 종교에 대해 ‘획일적’, ‘권위적’, ‘폐쇄적’이라는 거부감을 가진다.
그에 비해 무속 콘텐츠는 자기 주도적, 간편하며, 접근이 자유롭다.

  • 굳이 어딘가에 소속될 필요도 없고
  • 비용이 들지 않으며
  • 나의 고민을 누구에게도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즉, 무속 콘텐츠는 이들에게 가장 비개입적인 신앙적 시청 경험을 제공한다.

 

무속 콘텐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무속 콘텐츠는 개인이 선택하는 ‘자유로운 시청 콘텐츠’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실제 점집 방문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유료 점사를 받으며, 경제적 피해를 입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 이 콘텐츠는 단순한 오락인가, 실질적 판단에 영향을 주는 정보인가?
  • 시청자가 받을 수 있는 심리적, 금전적 피해는 어떻게 예방할 수 있는가?
  • 플랫폼은 무속 콘텐츠에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가?

특히 유튜브, 틱톡 같은 글로벌 플랫폼은 ‘의료’, ‘건강’, ‘금융’과 관련된 콘텐츠에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두고 있다.
하지만 ‘무속’이라는 영역은 이 모든 기준에서 회색지대에 존재한다.
그 결과, 무속 콘텐츠는 자율성과 위험성이 동시에 방치된 상태에서 유통되고 있다.

 

무속 콘텐츠를 둘러싼 새로운 윤리 논의가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무속 콘텐츠를 단지
“사람들이 좋아해서 만들고, 좋아서 보는 콘텐츠”라고만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콘텐츠는 실제로 다음과 같은 사회적 현상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 상업화된 ‘신의 말’이 정서적으로 취약한 사람에게 노출되고
  • 자극적인 말투불안심리를 자극하는 표현이 반복되며
  • 소비자가 스스로 구분할 수 없는 현실-연출 경계가 존재한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규제보다 윤리적 기준에 대한 논의다.
무속 콘텐츠를 제작하는 제작자, 유통하는 플랫폼, 시청하는 소비자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다음 질문을 고민해야 한다.

  • “나는 이 콘텐츠를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가?”
  • “나는 이 콘텐츠를 신뢰 가능한 정보로 소비하고 있는가?”
  • “이 콘텐츠는 누군가의 정서를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자각 없이는, 무속 콘텐츠는 단지 인기 있는 유행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위협하는 콘텐츠 군(群)이 될 수 있다.

 

결론: 코로나 이후, 무속 콘텐츠는 ‘사회 거울’이 되었다

코로나19는 인간의 일상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감정, 소비 습관, 미디어 인식, 신앙적 구조를 바꾸었다.

무속 콘텐츠는 그 변화의 한복판에 있었다.
단순한 오락도, 단순한 신앙도 아니며, 현대인이 외로움을 달래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정서적 도구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 현상을 단순히 위로의 방식으로만 받아들여선 안 된다.
그 안에는 진짜로 누군가의 판단에 영향을 주고, 돈을 움직이고, 믿음을 흔드는 문화적 힘이 숨어 있다.

무속 콘텐츠는 단순히 많이 본다고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비판 없이 소비되는 순간부터 위험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