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키운 현대판 무속인, 문제는 없을까?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리스 등 숏폼 플랫폼에서 무속 콘텐츠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영상에 끌린 건 우연이 아닙니다’, ‘지금 이걸 보는 당신에게 신이 말합니다’ 같은 문구는 단 몇 초 만에 시청자의 관심을 붙잡는다.
더 놀라운 점은, 이런 영상 뒤에 있는 무속인이 단지 종교인이나 점술가가 아니라 콘텐츠 알고리즘이 키워낸 ‘디지털 인플루언서’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에서는 현대 무속 콘텐츠가 어떻게 알고리즘 중심의 추천 구조 속에서 확대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 ‘무속인’이라는 정체성 자체가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지를 분석하며,
그로 인한 사회적·정서적 문제와 윤리적 경계를 함께 짚어보려 한다.
무속 콘텐츠, 왜 갑자기 늘어났을까?
무속 콘텐츠는 2018년 이전까지만 해도 플랫폼에서 소수의 마이너 콘텐츠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이후 무속 콘텐츠의 조회수, 제작 수, 구독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 배경에는 단순한 유행 이상의 구조적 요인이 있다. 바로 콘텐츠 추천 알고리즘이다.
무속 콘텐츠는 알고리즘이 좋아하는 조건을 모두 갖췄다
- 클릭률이 높다: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
- 시청 시간 유지가 길다: 점사 결말을 기다리며 끝까지 시청
- 감정 반응이 강하다: 댓글, 좋아요, 공유 등 상호작용 활발
- 재시청률이 높다: 구독자가 계속 반복 시청
플랫폼은 이러한 데이터 패턴을 기반으로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추천한다.
이 구조 속에서 무속 콘텐츠는 점점 더 많이 노출되고 알고리즘은 다시 그것을 상위에 올린다.
이것이 바로 ‘알고리즘 증폭 루프’다.
알고리즘이 ‘무속인’의 형태를 바꿔버렸다
과거 무속인은 대부분 지역 기반의 신령 매개자였다.
점집에서 대면 점사를 제공하고, 굿이나 제의를 통해 신과 소통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알고리즘은 무속인의 정체성과 역할을 재설계했다.
1. 무속인은 이제 ‘영상 포맷’을 이해해야 한다
- 시청자가 좋아하는 톤과 말투
-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는 제목 구성
- 구독자를 유도하는 대사 구조
이 모든 것이 ‘신령의 말’보다 앞서 고려된다.
신의 말은 자막과 썸네일로 포장되어야 시청자에게 닿는다.
2. 신의 메시지는 ‘클립 단위’로 쪼개져야 한다
- 긴 점사나 굿 장면은 잘리지 않는다
- 짧고 명확한 메시지가 반복 소비된다
그 결과, 깊은 의미를 지닌 종교적 의식은 단순한 스낵 콘텐츠로 분절된다.
3. ‘잘 뜨는’ 무속인이 계속 확장된다
조회수 기반으로 상위 노출이 반복되면 특정 무속인이 신령보다 ‘브랜드’로 기능하게 된다.
이때부터 중요한 건 신의 존재가 아니라 해당 유튜버의 말투와 연출력이 된다.
알고리즘이 만든 무속인의 대표적 특징
구분 | 전통적 무속인 | 알고리즘 기반 무속 유튜버 |
신앙 중심 | 굿, 제의, 지역 사회 중심 | 영상, 조회수, 후원 기반 |
전달 방식 | 직접 점사, 대면 의식 | 유튜브, 틱톡, 쇼츠 |
신의 해석 방식 | 점이나 신내림 통한 개인별 풀이 | 다수 시청자 대상 일반화된 해석 |
신뢰 확보 | 오랜 경험, 구전된 평판 | 구독자 수, 댓글 반응, 조회수 |
수익 구조 | 굿, 상담료 중심 | 광고, 슈퍼챗, 멤버십, 굿즈 |
무속 콘텐츠의 정체성이 모호해졌다
플랫폼은 무속 콘텐츠를 종교 콘텐츠로 분류하지 않는다.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멘탈 케어’ 콘텐츠로 인식한다.
이는 곧 알고리즘이 무속 콘텐츠를 종교적 메시지가 아닌 감정 상품으로 다룬다는 의미다.
결국 콘텐츠 제작자는 시청자 수요에 맞춰 신령의 언어를 ‘알고리즘 친화적 포맷’으로 가공해야 하고 그 결과 무속인의 역할은 신의 통로에서 콘텐츠 셀럽으로 전환된다.
이처럼 알고리즘은 현대 무속인을 새롭게 정의한다.
그 변화는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가?
1. 진정성의 상실
- 점사의 신뢰성보다 영상 퀄리티가 우선된다
- 신의 뜻보다 시청자 반응을 더 고려하게 된다
- 영적인 깊이보다 ‘시청률’이 성공의 기준이 된다
결국 시청자는 정확한 신의 메시지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인기 있는 유튜버의 감정 연출’을 소비하게 된다.
2. 신앙과 상업의 경계 모호
알고리즘은 무속 콘텐츠를 상품으로 만들어 수익화를 유도한다.
점사가 유료 멤버십으로, 상담이 슈퍼챗으로, 신의 언어가 굿즈로 전환되면서 신앙적 상징이 자본 구조 안에 흡수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신의 이름이 '클릭 유도 장치'로 쓰인다는 점이다.
신앙의 존엄성은 희화화되고, 점차 광고 메시지와 구분되지 않는 콘텐츠가 되어간다.
3. 시청자 판단력 저하
알고리즘은 시청자가 반복적으로 같은 콘텐츠를 보도록 유도한다.
그 결과 사람들은 비판 없이 특정 유튜버에게 감정적으로 의존하거나, 현실 판단을 점사 영상에 맞춰 결정하는 심리적 전이를 경험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콘텐츠 중독이 아니라, ‘디지털 신앙 편향’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문제다.
알고리즘 기반 신앙 콘텐츠, 어떻게 다뤄야 할까?
플랫폼은 무속 콘텐츠에 대한 명확한 분류와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광고 정책에서 민감한 주제로 간주되긴 하지만, 실질적인 정보 검증, 콘텐츠 신뢰성, 사회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작자와 소비자에게 떠넘긴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필요하다:
- 제작자는 신앙적 메시지를 콘텐츠화할 때, 상업성과 구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 플랫폼은 추천 알고리즘을 조정하여 신앙 콘텐츠가 과잉 노출되지 않도록 제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소비자는 무속 콘텐츠를 감정 위안이 아닌, 정보적 메시지로 맹신하지 않도록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춰야 한다
신의 이름으로 재생된다는 것의 무게
알고리즘은 단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콘텐츠를 보여주는 의도이자 힘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알고리즘이 ‘무속 콘텐츠’를 ‘현대 신앙의 소비재’로 만들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속인의 역할이 변화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변화가 신의 뜻을 재해석하는 과정이 아닌, 자극적 콘텐츠로 포장하는 길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질문해야 한다.
- 신의 언어가 15초 영상으로 압축되어도 괜찮은가?
- 신의 이름이 썸네일 소재가 되어도 되는가?
- 진짜 무속인은 누구이며, 알고리즘은 무엇을 키워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진짜 ‘신의 메시지’가 아니라 추천 알고리즘이 만든 환상을 믿게 될지도 모른다.
콘텐츠를 만드는 건 무속인이 아니다, 알고리즘이다
현대의 무속 콘텐츠는 형식적으로는 무속인이 제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유튜브나 틱톡의 알고리즘이 무엇을 더 보여줄지 결정하며 그 결과에 따라 무속인은 영상의 방향, 말투, 주제, 감정 연출 방식까지 조절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진짜 콘텐츠 기획자는 누구인가?
무속인이 아니라 ‘클릭 수를 높이도록 설계된 시스템’이다.
즉, 무속 유튜버는 콘텐츠의 제작자이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프로듀서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연기자에 가깝다.
대중의 감정을 설계하는 콘텐츠, 그 안에 종교가 있다면?
문제는 이 구조가 단순한 재미나 정보의 소비가 아니라는 점이다.
무속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종교적 메시지를 포함한 감정 콘텐츠이기 때문에 그 소비 구조는 시청자의 심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특히 다음과 같은 유형이 그 대표적 사례다:
- “이 영상을 본 당신은 신의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다”
- “지금 스크롤을 멈춘 건, 당신이 그 메시지를 들어야 할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 “이 말을 듣고 눈물이 난다면, 그건 신이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문구들은 종교적 의미와 디지털 감정 자극 방식이 결합된 형태로 시청자의 판단력과 거리두기 능력을 약화시키는 설계된 멘트다.
이는 사이비 종교와 감정 마케팅 사이의 경계를 흐리는 지점이다.
알고리즘이 신앙을 자동화하고 있다
과거 무속 신앙은 무속인과 개인이 마주보며 이뤄지는 1:1 구조였다.
거기에는 신을 향한 경외, 비밀 유지, 절차의 신성함이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무속 콘텐츠는 다음과 같은 자동화된 신앙 구조를 만들어낸다:
- 점사 영상은 타겟팅된 개인에게 자동 전달된다
- 시청자는 반복 소비하며 감정 이입을 강화한다
- 상담 유도 콘텐츠로 자연스럽게 전환된다
- 무속인은 다수의 ‘랜덤 사연’을 점사하며 멘트를 포맷화한다
결과적으로 신앙은 개인적 경험이 아니라, 자동화된 소비 루틴이 된다.
“구독→시청→감정적 동조→상담→소비”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플랫폼 중심으로 재설계된 디지털 신앙 순환 구조다.
우리는 지금, 선택된 메시지를 보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시청자는 자신이 우연히 본 무속 콘텐츠가 자신에게 필요한 말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건 우연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분석한 시청자의 행동 데이터에 따라 의도적으로 ‘끌릴 만한 콘텐츠’가 선별된 결과다.
즉, 사람들은 ‘끌린 것’이 아니라
‘끌리게 설계된 것’을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문제인 이유는 시청자가 ‘신의 뜻’이라고 믿는 메시지조차 사실은 플랫폼 로직에 따라 조정된 정보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의 메시지는 플랫폼 알고리즘과 편집자, 제목, 썸네일, AI가 만들어낸 기획된 스크립트일 수 있다.
진짜 무속인은 사라지고 있다
현재 무속 콘텐츠의 확산은 오히려 진정한 신앙인, 깊이 있는 무속 전승자들을 플랫폼 밖으로 밀어내는 효과를 낳고 있다.
- 말을 자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조회수가 나오지 않는다
- 굿이나 제의는 플랫폼 가이드라인에 걸릴 수 있다
- 상담을 영상으로 공개하지 않으면 노출되지 않는다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선 신앙보다 미디어 감각이 뛰어난 무속인이 필요해진다.
그 결과, 실제 신령과 연결된 경험이 풍부한 무속인은 점점 노출에서 밀리고 대신 콘텐츠 제작 기술에 능한 ‘셀럽 무속인’이 중심이 된다.
즉, 알고리즘은 무속인의 영적 능력이 아니라, 미디어 역량을 기준으로 그들의 영향력을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 신을 소비하는 사회, 우리가 멈춰야 할 지점은?
우리는 신의 이름으로 제작된 콘텐츠를 플랫폼이 정한 방식으로 소비하고 그 결과를 믿고, 때로는 자신의 선택과 감정을 바꾸기도 한다.
이 구조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무의식적으로 반복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생긴다.
신의 말처럼 보이는 콘텐츠가 실은 클릭률 높은 문장으로 편집된 결과물이라면 신의 말로 포장된 멘트가 실은 후원을 유도하는 기획 문구라면,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진짜 신의 뜻은 쉽게 소비되지 않는다.
플랫폼이 설계한 알고리즘의 결과물이 당신의 운명을 말해주는 진짜 메시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신앙’이 아니라 ‘환상’을 믿게 될지도 모른다.